연극과 희곡의 기원
연극이 정말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에 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다. 오늘날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은 연극이 종교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이 견해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태초에 인간들은 이 세상의 자연적인 요소들을, 심지어 계절적 변화까지도,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이 미지의 두려운 세력들을 다스리고자 했다. 그중에서 바라던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여지는 조치들이 계속 유지, 반복되어 급기야 고정된 의식들로 굳어졌다. 의식의 신비를 설명하거나 그 베일을 벗겼던 이야기가 마침내 등장했다. 인류가 개화되어 감에 따라서 사람을 제물로 삼는 등의 야만적인 의식들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후에 신화라고 부르게 되는 이야기들은 살아남아 예술과 연극의 재료를 제공해 주었다.
연극이 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또 원시 의식에는 음악, 춤, 가면 및 의상들이 항상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 벌써 연극의 씨앗이 내포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공연을 위한 적합한 부지가 마련됐을 수밖에 없었고 부족 전체가 참여하지 않았을 때는 '연기구역'과 '객석'이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그 외에 연희자들이 있었다. 의식을 거행하면서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했으므로 대개는 성직자들이 부족을 대신해서 그 일을 맡았다. 그들은 가면을 쓰고 분장 하면서 자주 사람, 짐승 또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체현하였고, 배우처럼 바람직한 효과─사냥이나 전쟁에서의 승리, 비가 오는 것, 해가 다시 뜨는 것─을 무언극으로 표현하였다. 사람들이 연극적 형식과 종교적 활동을 구별할 만큼 지식이 발달하면서 그러한 극적 의식들로부터 연극이 발생하였다고 전한다.
연극과 희곡이 의식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는 이론은 설득력이 강하다. 필시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보다 진화된 사회에서처럼 그들의 삶의 여러 양상(일, 종교, 유희)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세계를 다루려는 인간의 여러 시도(과학, 철학, 예술)도 연극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의식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이 이론의 취약점이 있다. 풍족한 수확을 다짐받기 위해 원시인들은 의식을 거행하였고(비료를 뿌리는 대신), 그 의식에서 그들은 자신과 우주에 대한 그들의 개념을 요약하였다. 대부분의 의식에 연극적이며 희곡적인 요소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의식적 기원론은 왜 연극과 희곡이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분리되어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이전의 신분을 잃은 뒤에도 높이 평가받고 그 중요성을 점점 더해 갔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한다.
또 하나의 이론은 연극의 기원을 스토리텔링에 대한 인간의 흥미에 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야기들(사냥, 전쟁 또는 기타 무용담)이 처음에는 해설자의 체현, 행동 및 대화를 통해서, 이후에는 각 역할을 다른 사람이 맡아 함으로써 점차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어느 이론은 율동과 체조가 주를 이루는 춤, 또는 동물의 움직임과 소리를 모방하는 것에서 연극의 기원을 찾는다.
또 하나의 이론은 희곡과 연극을 인간의 '유희' 본능에 관련시킨다. 여기서 '유희'는 오락적인 활동이라는 의미와 특수한 행사 또는 상황 안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놀이라는 의미 등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모방적이다─즉 인간은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 어떨 것인가, 또 왜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는 남을 모방하는 것과 또 모방한 것을 보기를 즐긴다─라고 썼을 때 그는 아마도 이 본능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나아가서 모방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배우는 주요 방법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을 흉내를 냄으로써 말과 행동을 배우듯이 20세기에 들어와서 많은 심리학자가 인간은 환상의 재능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현실을 일상생활의 형태로부터 보다 만족스러운 형태로 바꾸려고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픽션(드라마도 그 한 형식이다)을 통해 인간은 불안과 공포를 객관화시켜 그것들을 대면할 수 있게 되거나, 상상으로나마 희망과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극은 인간이 세계를 규명, 이해하는 한 도구이거나 혹은 유쾌하지 않은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집단이 의식을 행했거나 이야기를 만들었어도, 그리고 인간이 모방하고 환상을 꾸며 내었었어도 모든 사회가 의식으로부터 분리된 연극과 희곡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최소한 두 가지의 다른 조건들이 요구되는 것 같다. 즉 연극과 희곡의 예술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사회와 연극적 요소들을 높은 진설의 경험으로 구성해 낼 수 있는 개인들 등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그리스인들이 대체로 연극의 시조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서구 세계에 알려진 그 형식을 그들이 최초로 개발했기 때문이다.